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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라켓볼 역사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라켓볼이 소개된 것은 1965년으로 미 8군 내 트렌트 짐에 라켓볼 코트를 만들어 친 것이 라켓볼의 시초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라켓볼보다는 손바닥을 이용한 핸드볼을 즐겼으며 그 후 장비가 다양하게 개발되어 1970년대부터는 라켓볼 경기를 주로 하게 되었다.
라켓볼이 정식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서강대학교와 코오롱 스포렉스에 라켓볼 코트가 세워지면서이다. 이때부터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포항공대와 공군사관학교 등 여러 학교 단체와 사회 스포츠센터로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여 1987년 코오롱 스포렉스를 중심으로 동호인 단체가 결성되어 전국 라켓볼 보급화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때에 국내 첫 공식 대회인 제1회 한국오픈라켓볼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1988년과 1989년에는 일본에서 개최되는 일본 오픈 대회와 아시아 대회에 참가하여 기술향상은 물론 한‧일 간 친선을 도모하며 교류가 활성화되었다.
이 시기에 라켓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신문과 방송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많은 동호인 수가 늘어났으며, 테니스 선수들이 라켓볼로 전환하기도 하였다.
1990년에는 국내 최초로 ‘한병구 라켓볼’ 책자가 출판되어 라켓볼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고, 1990년 6월 7일에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제5회 세계라켓볼 선수권대회에 국내 최초로 한병구 선수와 정남환, 김준성 임원이 참가하였다. 이때에 정식으로 한국 라켓볼이 등재되어 세계라켓볼연맹(I.R.F)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 후 1991년 6월 서울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라켓볼 선수들과 동호회 단체들이 회합을 갖고 국내 라켓볼 협회의 공식적인 명칭을 ‘한국아마추어라켓볼협회(Korea Amateur Racquetball Association: K.A.R.A)’로 결정하였다.
한국아마추어라켓볼협회 초대 회장으로는 정남환 씨가 만장일치로 선출되어 창립식과 함께 정식으로 한국아마추어라켓볼협회(Korea Amateur Racquetball Association: K.A.R.A)가 출범하였다.





이때부터 전국 규모의 대회를 개최하여 많은 선수들이 발굴되었다. 199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6회 세계라켓볼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한병구 선수가 화이트 부문에서 금메달, 조영일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복식에서 블루 부문에서 한병구, 조영일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여 한국 라켓볼 실력을 과시하였다.





1994년 초대 회장의 임기를 마치고 2대 회장에 대구협회장을 맡고 있던 홍영상 씨가 선출되어 협회의 명칭을 한국라켓볼협회(Korea Racquetball Federation: K.R.F)로 개칭하였다.





1996년 미국의 피닉스 시에서 개최된 제8회 세계라켓볼선수권대회에 남녀 선수 8명을 파견하여 30개국이 참가한 대회에서 짧은 라켓볼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가 등위 11위를 차지하였다.한국라켓볼협회는 세계대회 참가를 계기로 미국과 일본의 협회 운영 방식을 도입하여 회원 등록 제도를 실시하고, 정기간행물인 ‘라켓볼 코리아’를 창간하였으며, 일본에서만 개최되던 아시아 선수권대회를 한국으로 유치하였다. 1997년 8월 1일 안산시(월드스포션)에서 제10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국내 최초로 TV 중계방송 하에 개최하였다.







IMF 관리하의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1998년 남미의 베네수엘라 코차밤바에서 열린 제9회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선수를 파견하여 이상수, 조영일 선수가 복식 화이트 부문에서 금메달, 장동민과 이희연 선수가 레드 부문 개인전에서 동메달, 박교준 선수가 화이트 부문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다.





1999년 9월, 제11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한국에 다시 유치하여 안양시(청소년수련관)에서 대회를 개최하면서 아시아라켓볼연맹 총회를 국제라켓볼연맹(I.R.F)의 수석 부회장인 Keith Calkins 씨를 임시 의장으로 해서 개최하고, 아시아연맹 정관을 채택하여 아시아연맹 임원을 선출하였다. 회장에 홍영상 한국라켓볼협회장. 부회장에 괌의 Frank Rios, 일본의 YasushiTanahara, 사무총장에 한병구, 재무 천종일을 선출하여 한국이 아시아 라켓볼을 주도하는 회장국이 되었다.





1999년 12월 한국라켓볼협회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협의회에 각각 가맹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 후 2년마다 아시아라켓볼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고, 2004년 7월 3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경기도 안양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세계라켓볼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2010년 8월 11일에는 6년 만에 세계라켓볼선수권대회를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도전기공고에서 개최하여 한국라켓볼을 알리고 홍보하는데 공헌하였다.
2016년 9월 21일 국민생활체육전국라켓볼연합회와 대한라켓볼연맹이 하나의 단체로 통합되어 단체의 명칭을 대한라켓볼협회로 통일시켜 초대회장으로 강근영 회장이 선출되었다. 또한 아시아라켓볼연맹 회장으로는 국제라켓볼연맹 부회장인 조왕기 회장이 선출되어 한국라켓볼이 국제연맹의 회장 국가로 위상이 높아졌다.





1980년 후반 우리나라에 라켓볼이 처음 소개된 이후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라켓볼 인구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대중 스포츠로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